간송옛집에서 만난 방학동의 고요한 저녁 산책

비가 그친 뒤의 저녁 무렵, 방학동 언덕 끝자락에 있는 간송옛집을 찾았습니다. 습기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공기에는 나무 냄새가 섞여 있었습니다. 골목을 따라 올라가며 작은 담장을 지나자 낮은 처마와 기와 지붕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곳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머물던 곳으로, 집의 구조와 정원이 당시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입구 앞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르니, 마당 안쪽에서 들리는 물소리가 잔잔하게 흘러나왔습니다. 복잡한 생각이 천천히 가라앉았고, 이곳이 단순한 주택이 아니라 한 시대의 숨결이 남아 있는 자리라는 사실이 마음에 닿았습니다. 도시의 불빛이 멀리서 반짝였지만, 담장 안쪽은 그와는 다른 시간의 흐름을 품고 있었습니다.

 

 

 

 

1. 방학동 골목 끝에서 만난 길의 시작

 

간송옛집은 방학역에서 도보로 15분가량 거리입니다. 길이 복잡하지는 않지만, 주택가 사이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이라 천천히 걷는 편이 좋습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면 ‘간송옛집’이라 적힌 작은 표석이 보이는데, 그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바로 입구가 나타납니다. 주차장은 협소하여 근처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오래된 가로등과 돌담이 이어져,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주변에는 식당이나 상점이 거의 없어 조용히 걸을 수 있습니다. 입구 앞 안내문에는 운영 시간과 관람 주의사항이 적혀 있으며, 초행길이라도 안내 표지판이 일정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어 찾기 어렵지 않습니다. 오후 늦게 방문하면 노을빛이 처마 끝에 걸려 색이 한층 깊어집니다.

 

 

2. 담장 너머로 이어지는 정원의 흐름

 

안으로 들어서면, 고요한 정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오래된 소나무가 가지를 길게 뻗고 있습니다. 바닥의 자갈이 발밑에서 부드럽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 옆에는 작은 연못이 자리해 있습니다. 집은 ㄱ자 구조로 배치되어 있으며, 마루에서 정원을 바라보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수평으로 이어집니다. 벽체의 한지문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부드럽게 퍼져 공간 전체를 감쌌습니다. 내부는 외관보다 넓게 느껴졌고, 구조가 단정했습니다. 방문객이 많지 않아 한동안 혼자 머물 수 있었는데, 그 정적이 오히려 마음을 안정시켰습니다. 간송 선생이 당시 수집하던 예술품을 보관하던 공간이라는 안내가 인상 깊었습니다. 소리 하나 없는 집 안에서 나무가 숨 쉬는 듯한 기운이 전해졌습니다.

 

 

3. 오래된 집이 전하는 간결한 품격

 

간송옛집의 매력은 화려함이 아닌 절제에 있습니다. 대청마루는 단단한 목재로 만들어져 있었고, 발을 올리면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습니다. 기둥의 결마다 세월의 무늬가 남아 있었지만, 손질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처마의 끝부분이 살짝 휘어져 있어 구조적 균형이 돋보였습니다. 마루 끝에서 바라본 정원은 단정하고, 작은 돌 하나까지 의도적으로 배치된 듯했습니다. 단청은 거의 남지 않았지만, 그 담백함이 오히려 더 세련된 인상을 주었습니다. 공간 전체가 군더더기 없이 정리되어 있어, 간송 선생의 성품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는 듯했습니다. 전통가옥의 정제된 미감을 느낄 수 있었고, 현대식 건축에서는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여백의 미’가 뚜렷했습니다.

 

 

4. 사소하지만 깊이 있는 공간의 배려

 

간송옛집 안에는 눈에 띄는 편의시설이 많지 않지만, 공간 자체가 세심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발을 벗는 자리에는 작은 대나무 발판이 놓여 있어 먼지가 실내로 들어가지 않게 되어 있었습니다. 안내실 한편에는 방문객이 앉아 쉴 수 있는 의자가 있었고, 그 옆에는 간송 선생의 생애를 간략히 정리한 인쇄물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실내에는 인공 향이 아닌 나무와 한지에서 나는 자연스러운 냄새가 감돌았습니다. 벽면의 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일정한 패턴을 만들어, 그 자체가 하나의 장식처럼 보였습니다. 직원은 방문객이 많지 않아도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갔고, 그 목소리가 정원의 고요함과 잘 어울렸습니다. 이곳에서는 굳이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배치와 조용한 공기가 이미 완전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5. 옛집을 나서며 이어진 방학동 산책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 방학천이 가까이에 있습니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내려가면 방학천 산책로가 나오는데, 물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을 수 있습니다. 길가에는 작은 카페와 전통차 전문점이 몇 곳 있습니다. ‘도봉차방’이라는 한옥 카페는 간송옛집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 들러서 차 한 잔 마시기에 좋습니다. 그 옆에는 ‘방학동묵집’이 있어 간단한 식사를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봄과 가을에는 산책로 주변 벚나무와 단풍나무가 색을 바꾸어,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간송옛집의 여운을 이어가며 조용한 저녁 산책을 즐기기에 더없이 적당한 동선입니다.

 

 

6. 방문 전 유용한 팁과 시간대

 

간송옛집은 관람 시간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오후 늦게 방문하면 햇빛이 기와에 부드럽게 비쳐 사진이 아름답게 나옵니다. 내부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므로 양말 상태를 미리 확인하면 좋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마루가 약간 미끄러우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촬영은 가능하지만 삼각대 사용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관람 인원이 많지 않아 예약 없이도 입장이 가능하지만, 주말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이 늘어 조금 붐빌 수 있습니다. 도심과 가까워 대중교통 접근이 편리하며, 버스를 이용하면 방학천 입구에서 바로 하차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평일 오후 3시 무렵 방문하는 것이 가장 여유롭고, 햇살의 각도도 가장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마무리

 

간송옛집은 단순한 고택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공간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신념과 미의식을 고스란히 담은 장소로, 현대적인 도시 속에서 잊히기 쉬운 ‘조용한 아름다움’을 다시 느끼게 했습니다. 나무 향과 빛의 움직임, 그리고 정원의 공기가 서로 맞물려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다시 방문한다면 계절이 바뀌는 시점에 가보고 싶습니다. 봄의 연한 빛 속에서, 혹은 겨울의 정적 속에서 이 집이 어떻게 다른 얼굴을 보여줄지 궁금합니다. 화려한 것보다 담백한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간송옛집은 충분히 그 기대를 채워줄 것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