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용담사지 석불입상에서 만난 산속 고요와 늦가을의 깊은 울림
늦가을 오후, 남원 주천면의 골짜기를 따라 천천히 오르자 산자락 아래로 조용히 서 있는 돌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용담사지석불입상이었습니다. 산등성이를 배경으로 서 있는 불상은 멀리서도 눈에 띄게 단단했고, 주위는 낙엽이 가득 깔려 고요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차가운 돌의 질감이 손끝에 전해졌고, 부드럽게 마모된 얼굴에는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습니다. 눈을 감은 듯한 표정은 묘하게 온화했고, 옷주름이 단정하게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불상 주위를 맴돌았고, 그 고요한 소리마저 이곳의 한 부분처럼 느껴졌습니다.
1. 주천면 산골 깊숙한 위치
용담사지석불입상은 남원 시내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 주천면 호경리의 산자락 끝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면 ‘용담사지 석불입상’ 표지판이 도로 옆에 보이며, 좁은 시멘트길을 따라 약 500m 정도 들어가면 작은 주차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후 짧은 오르막길을 걸으면 나무들 사이로 석불이 보입니다. 길은 잘 정비되어 있으나 낙엽이 많아 천천히 걸어야 합니다. 주변에는 인가가 거의 없어 매우 조용하며, 바람 소리와 새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산속의 맑은 공기와 함께, 불상 앞으로 다가서는 길이 마치 옛 사찰로 향하는 길처럼 느껴졌습니다.
2. 돌의 질감과 비례가 살아 있는 불상
석불입상은 높이 약 4미터의 거대한 규모로, 거친 화강암을 다듬어 세운 불상입니다. 머리는 둥글고, 이목구비는 간결하지만 단정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눈은 반쯤 감긴 듯 표현되어 있으며, 미소를 머금은 입술이 안정감을 줍니다. 어깨는 넓고 단단하며, 옷주름은 수직으로 깊게 새겨져 있어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인상을 줍니다. 두 손은 가슴 높이에서 모은 형태로, 자비와 명상의 상징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표면에는 풍화로 인한 미세한 균열이 있지만, 전체적인 윤곽은 여전히 뚜렷했습니다. 햇빛이 비칠 때마다 돌 표면이 은은하게 빛나며, 오랜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3. 절터와 불상의 역사적 맥락
이 불상이 서 있는 자리는 통일신라 말기 혹은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용담사 터입니다. 지금은 사찰 건물은 모두 사라지고 석불입상만이 남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 불상이 신라 후기의 불교 조각 양식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하며, 특히 간결한 얼굴선과 단정한 옷주름에서 지방 불상의 특징이 드러난다고 설명합니다. 용담사는 예로부터 산속 수행처로 알려졌으며, 불상 뒤편의 바위에는 수행자들이 남긴 흔적들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비록 절은 사라졌지만, 불상 하나만으로도 이곳이 신앙의 중심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4. 자연 속에서 더 빛나는 고요한 풍경
석불입상 앞에는 작은 평지가 있어 잠시 앉아 쉴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바라본 풍경은 단정하고 평화로웠습니다. 불상 뒤편으로는 소나무 숲이 이어지고, 앞쪽으로는 산골짜기의 개울이 굽이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불상의 그림자가 흔들리며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과 어우러졌습니다. 오후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을 때, 불상의 얼굴은 더욱 부드럽게 빛났습니다. 이곳에는 안내판 하나와 작은 돌계단 외에는 인공적인 시설이 거의 없어, 자연과 불상이 하나의 장면처럼 어우러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이 감돌았습니다.
5. 함께 둘러보기 좋은 남원의 역사 코스
용담사지석불입상을 둘러본 뒤에는 차로 20분 거리의 ‘실상사’를 함께 방문하면 좋습니다. 두 곳 모두 통일신라 시대 불교문화의 흐름을 잇는 장소로, 석조 예술과 사찰 건축의 차이를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이후 ‘남원향교’나 ‘광한루원’으로 이동해 조선시대의 전통 문화를 이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점심은 주천면 중심의 ‘주천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추천합니다. 오후에는 인근의 ‘지리산 자락길’을 따라 산책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좋습니다. 역사와 자연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남원만의 고요한 코스였습니다.
6. 방문 팁과 유의사항
용담사지석불입상은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산속에 위치해 있어 비가 온 뒤에는 진입로가 미끄럽기 때문에 등산화를 착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름철에는 벌과 모기가 많아 긴 옷차림이 필요하고, 겨울에는 바람이 세차므로 방한복을 챙기길 권합니다. 불상 주변은 보호구역이므로 손을 대거나 돌을 옮기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오전 9시 무렵의 햇빛이 불상 얼굴을 부드럽게 비추며 사진이 가장 아름답게 나왔습니다. 조용히 앉아 돌의 온도와 바람의 흐름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마무리
용담사지석불입상은 화려한 장식 없이도 오랜 세월의 품격이 전해지는 불상이었습니다. 단단한 돌 위에 새겨진 얼굴은 단순하지만 깊은 평온을 담고 있었고, 산속의 고요함과 어우러져 묘한 위로를 주었습니다. 비록 사찰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남은 불상 하나만으로도 신앙의 숨결이 느껴졌습니다. 다시 찾는다면 봄 안개가 옅게 깔린 새벽, 산의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올 때 이곳의 고요함을 다시 느끼고 싶습니다. 남원의 자연과 불교미가 함께 살아 숨 쉬는, 세월이 만든 성스러운 공간이었습니다.




댓글
댓글 쓰기